고등어

一喜一悲 2006/07/21 17:16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늘 아침, 집 앞에서 무심코 차를 빼다 앞을 휙 하고 지나가는 차를 들이 받을뻔 했다.
당연히 조심성 없이 옆을 안 보고 나가려던 내 잘못이 컸기에 상대 운전자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 젊은 여자 운전자의 표정을 보는 순간, 왠지 미안한 마음이 싹 가신다.
좁은 골목인 점을 감안하면, 내 차가 서서히 차를 빼며 이미 골목의 삼분의 일은 차지한 상태였고,
내 차 옆에는 또 다른 차가 주차를 하고 있는 중에
그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기는 커녕, 내가 당연히 정지할 것이라고 가정했는지 그 좁은 공간을 바삐 지나가려 했으니,
그녀 또한 무모함에 대한 잘못이 전혀 없다고 보기 힘들거늘,
그녀의 힐난에 찬 표정은 가히 뻔뻔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순간, 오래전 봤던 공지영의 소설 '고등어'의 한 부분이 생각났다.
소설 초반에 대조적인 두 여인을 등장시켜 대비하는 내용이다.
한 여인은 등에 아이를 들쳐 업고 또 한 손에는 또 다른 아이의 손목을 이끌며 건널목을 건너려던 20대 초라한 여인으로,
주인공이 무심코 차로 칠 뻔 했음에도 건널목에서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오히려 연신 미안해하는 태도를 보이는 여인이고,
또 다른 여인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주차장에서 주차를 제대로 하지 못해, 뒤에서 보다 못한 주인공이 직접 나서서 주차를 도와 주거늘
마치 마땅히 받을 만한 자신의 권리를 받은냥 감사한 표정 한번 보이지 않고 가버리는 무례한 여성이다.

살다보면 일상 중 많은 사람과 마주한다.
그 중에는 전자의 여인처럼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그 도가 지나쳐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후자처럼 이기심과 무례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도 있다.
또한, 마주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대하는 상대의 태도 또한 당연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내 자신은 과연 남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 보게 된다.
심기가 불편할 때면 입에 담았던 수많은 욕설, 반대에 선 자에게 보인 숱한 냉소, 주위 사람에 대한 무관심...
세상을 향해 내뱉은 이 모든 나의 이기적이고 무례한 태도가 곧 나에겐 그와 똑같은 대접을 받아 마땅한 인간으로 값어치 매김을 깨닫게 된다.

등어 얘기를 하다 보니 고등어에 관한 재미난 기억이 하나 생각난다.
대학 생활 초창기 선배들이 사주는 술판에서 늘 안주라고는 잘해봐야 파전, 두부김치요 어쩔땐 깍두기 국물이나 빨며 그 독한 소주를 들이키기도 했다.
그러던 선배들이, 하루는 높으신 선배의 결혼식을 들른터라 총알이 두둑했던지,
그 짜디 짠 선배들이 왠일로 갈비를 뜯자고 한다.
늘 제대로 된 안주에 안달이 나 있던 우리 후배들로선 감지덕지한 마음 감출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게 왠일인가, 갈비집이라고 들른 곳에 떡하고 나오는 안주라고 고등어가 아니겠는가.
바로 '고갈비'였던것이다.
예전에 대학 생활을 한 분들이야 고갈비라는 것이 주머니 사정 뻔한 배고픈 대학생 입장에
그나마 적당한 가격으로 부실한 몸을 보신할 최고의 고단백 영양 안주일 테고,
요즘처럼 웰빙 시대에야 고등어가 왠만한 갈비 못지 않은 대접을 받을 만 하겠으나,
나 같은 일명 어중간한 '신세대' 대학생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안주일뿐더러,
그저 비릿한 생선구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그 짜디 짠 안주가 마치 선배들 같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끝으로, 소설 '고등어'의 또다른 명대사 한 부분 발췌해 본다.
그리고 위 사진은 고등어가 아니라 다대포에서 찍은 이름모를 썩은 생선임을 밝힌다.

......
"가끔씩 방파제 멀리로 은빛 비늘을 무수히 반짝이며 고등어떼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는데.
살아 있는 고등어떼를 본 일이 있니?"
"아니"
"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
......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 공지영의 소설 '고등어' 중

2006/07/21 17:16 2006/07/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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